살다보면 거두절미하고 죽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젖까지 넘어오는 고통과 절망의 질감 속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자살이라는 결론에 목을 맨 적이 있다
눈물샘이 불어나고 유서 한 장 써 낼 기운조차 없을 때
할머니의 절구통은 내 죽음을 원천봉쇄한다
할아버지는 육이오 때 수류탄 터져 죽었고
외삼촌은 여순 사건 때 총 맞아 죽었고
큰아버지는 월남전에서 죽어서 돌아왔다
막내고모는 어릴 때 병원도 못 가보고 꼽추가 되었다
할머니는 현미쌀눈보다 많은 세월 속에서
못 생긴 바위하나 입양하여 날마다
두드리고 갈고 찍고 때리고 달래며
피맺힌 돌 절구 하나 낳았다
새벽마다 꽁보리 찧어 지은 따순 밥 덕에
시동생 자식새끼 손주손녀 다 제 밥벌이 하게 만든
일등공신 할머니의 도구통
담석 닮은 내 절망을 절구공이로 곱게 빻아
가슴을 쓸어주신다
"아가 - 저 도구통 이제 니 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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