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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우물 승천 / 정우영

 

 

 

 

 

 

 

 

 

 

 

 

 

 

 



 

 

 

 

 

 

 

 

 

 

 

  오랜만에 고향집 뒤꼍으로 가서

  한 이십년 족히 닫혀 있던 우물 뚜껑을 열었더니

  늙은 개구리 한마리 엉금엉금 기어나오고

  반쯤 쥐에 뜯긴 붕어도 한마리 슬슬 헤엄쳐 나온다.

  꽃다운 나이 열둘에 우물 속으로 사라진 누이도

  나올까 싶어 한참 동안 쭈글치고 앉아 기다린다.

  영 기미가 없어 윗몸 우물에 거꾸로 들이밀고 소리친다.

  우리 누이는 언제 나온다냐?

  내 말 메아리 되어 우물 속을 웅웅 떠다니더니

  마술인 듯 우물에서 하늘길 열리고

  누이 닮은 하얀 연꽃 하나 다소곳이 걸어나온다.

  아하, 나는 불현듯 깨닫는다.

  누이는 선녀처럼 두레박 타고 내려가 승천했음을.

  우리 집 우물이 하늘로 되돌아가는 자궁이었음을.

 

                          - 시집 <집이 떠나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