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참 좋은-

내 황홀한 묘지 / 이기와

 

 

낡은 서랍 가득 낡은 브래지어가 쌓여 있다

어느 야산의 공동묘지처럼

구슬피 쌓여 있는 봉분들

제 명대로 세상을 누려보지 못하고

어느새 황홀하게 망가진,

가끔은 한없이 우스꽝스러운

욕정의 쭉정이 같은 것들

더 이상의 수치심도 없이

거실 바닥이나 욕실 세면대 위에

상스럽게 나앉아 있는

한때 어떤 것은 에로틱한 우상이었다

매력 없는 이 박색의 세상도 추근덕거려 보고 싶은

그렇게 실제보다 몽상의 사이즈를 더 부풀리는

몽실몽실한 마력의 봉우리였다

쾌락의 육질을 감싸 안은 황금빛 실루엣이었다

이제는 터지고, 해지고, 뭉개진

탄력의 감촉을 잃은 진무른 송장에 불과한

시골 어느 삼류화가의 싸구려 춘화처럼

흥분시킬 그 어떤 상징도 메타포도 없이

골방 구석지기에 천박한 자태로 누워 있는 흉물

단 한 번도 희비의 오르가즘에 도달해 보지 못하고

생매장당한 내 젊음의 불쾌한 흔적인

저 젖무덤들,

푹푹 썩어드는 저 황홀한 관짝들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가 나이 먹으니 / 오경화  (0) 2022.02.06
내 탓입니다 / 이정하  (0) 2022.02.06
그리움 / 신달자  (0) 2022.02.06
입춘 / 목필균  (0) 2022.02.06
겨울 안부를 묻다 / 이송희  (0) 202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