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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도화 아래 잠들다 / 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