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말 박서방 댁
먹고 사는 것도 바쁜데
사랑이 뭐 말라죽은 거냐고
밤낮 논두렁 밭두렁만 기었다.
그 핏줄 아니랄까봐 탯줄 떨어지기 전부터
지집질부터 배웠다고 시엄니 눈 감기 전까지 하던 말,
밤가시처럼 머릿속에 박혀
사내 같은 거 애저녁에 잊었다고
손바닥만 한 텃밭 감자알이나 굵어라
푹푹 북을 주어 두렁을 덮어 주고
해질녘 개울물에 호미날을 씻는데
하늘 한 귀퉁이 대처 것 눈썹 닮은 낮달
자꾸만 힐끔거려지고,
그년하고 눈 맞은 서방 어른거리고,
얼굴이 벌개졌다가, 가슴이 뜨거워졌다가
훌훌 적삼 벗어 던지고 개울물에 뛰어들어도
가슴은 식을 줄 모르고,
밤나무는 어느새 저리 꽃을 피웠는감.
밭머리 훤한 밤꽃을 쳐다보다가
- 저 징헌 놈의 냄시
- 『저 징헌 놈의 냄시』(리토피아,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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