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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침 발라 돈을 세면서 / 김남주

 

 

 

 

이래뵈도 나는 단호한 사람이다

마누라에게만은 

누가 나를 찾으면 없다고 해!

그러면 마누라도 단호해진다

그런 사람 집에 없어요!

그러면 십중팔구는 물러간다, 큰 말썽없이

 

그런데 십중팔구 아닌 사람이 있다

그는 똘똘 뭉친 우리 내외의 

단호한 가슴을 밀어제치고 쳐들어 온다

그는 밀어제치고 쳐들어 온다

그는 빚쟁이이고 그는 형사다

 

그들은 막무가내 안하무인으로

우리 사생활의 비상구를 쳐들어 와서

승냥이처럼 구석구석 살피고 사냥개처럼 킹킹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빚쟁이는 귀신같게도

마누라가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감춰둔

유식한 말로 말해서 우익에 은닉해 둔 돈을 빼내가고

그리고 형사는 귀신같게도

내가 왼쪽 겨드랑이 밑에 숨겨 둔

유식한 말로 말해서 좌익에 은닉해 둔 소책자를 압수해 간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부자들 집으로 가지고 가서 돈과 맞바꾼다

 

역시 돈이다, 돈의 낮짝에는

체면이고 뭐고 양심이고 뭐고 없다

 

돈의 얼굴에서 인간성을 찾는 것은

갈보의 보지에서 처녀성을 찾는 것처럼 무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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