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말하는 시에 마음을 내어준 적이 별로 없다.
크게 부르짖는 희망은 미학적 파탄을 가져오기 쉽고,
낮게 읊조리는 희망에는 어딘가 타협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문학이 희망을 줄 수도 있을까.
문학은 절망적인 세계 앞에서
사력을 다해 절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은가.
문학은 절망의 형식이다.
우리의 나약하고 어설픈 절망을 위해 문학은 있다.
그리고 희망은 그 한없는 절망의 끝에나 겨우 있을 것이다.
-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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