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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맨드라미에 부침 / 권대웅

 

 

 

 

 

 

 

 

 

 

 

 

 

 

 

 

     언제나 지쳐서 돌아오면 가을이었다.

     세상은 여름 내내 나를 물에 빠뜨리다가

     그냥 아무 정거장에나 툭 던져놓고

     저 혼자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나를 보고 빨갛게 웃던 맨드라미

     그래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었다.

     단지 붉은 잇몸 미소만으로도 다 안다는

     그 침묵의 그늘 아래 며칠쯤 푹 잠들고 싶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며 일어서는 길에

     빈혈이 일 만큼 파란 하늘은 너무 멀리 있고

     세월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 변방의 길 휘어진 저쪽 물끄러미 바라보면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문을 여는 텅 빈 방처럼

     후드득 묻어나는 낯설고도 익숙한 고독에

     울컥 눈물나는 가을

     덥수룩한 웃음을 지닌

     산도적 같은 사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혹시 서 있다가

     아름답도록 아픈 사람을 만나면 불러주십시오.

 

     - 『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문학동네,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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