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도 늑골이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햇빛이 자리를 바꿀 때마다
가려졌던 젖은 기억들이 드러나 부끄러울 때가 있다
따가울 때가 있다
모두가 그것을 감추고 살지만
봄이 목이 메도록 짙은 철쭉을 데려오고
여름이 훌쩍 해바라기를 데려가듯이
떠나간 것들이 다시 오고
다시 온 그 무엇 때문에 못 견디게 외로울 때가 있다
때로 어떤 저녁 지나가는 바람에 묻어 있는 냄새에
오래 비어 있는 적산가옥 같은 것
저녁의 뒤란 같은 것
마당에 가뭇가뭇 꺼져가는 짚불 같은 것
그곳에서 살았던,
사랑했던 기억이 잠깐 떠오르려다가
후다닥 먼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떠나고 다시 오면 바뀌어가는 것들
그렇게 우리는 어떤 거대한 바퀴에 실려갔다가
모든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서로가 그리운 계절에 다시 온 것 아닐까
가끔씩 그 사이가 보이고
목에 걸린 작대 같은 그 기억 때문에
못 견디게 외로운 저녁
- 권대웅 시집 <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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