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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폐사지에서 / 이봉주

 

 

 

 

 

 

 

 

 

 

 

 

 

 

   부처가 떠난 자리는

   석탑만 물음표처럼 남아 있다

   귀부 등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득히 목탁소리 들리는 듯한데

   천 년을,

   이 땅에 새벽하늘을 연 것은

   당간지주 둥근 허공 속에서

   바람이 읊는 독경 소리였을 것이다

   천 년을,

   이 땅에 고요한 침묵을 깨운 것은

   풍경처럼 흔들리다가

   느티나무 옹이진 무릎 아래 떨어진

   나뭇잎의 울음소리였을 것이다

   붓다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설법 하였으니

   여기 절집 한 칸 없어도 있는 것이겠다

   그는 풀방석 위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으니

   불좌대 위에 풀방석 하나 얹어 놓으면 그만이겠다

   여기 천년을 피고 진 풀꽃들이 다 경전이겠다

   옛 집이 나를 부르는 듯

   문득 옛 절터가 나를 부르면

   천 년 전 노승 발자국 아득한데

   부처는 귀에 걸었던 염주 알 같은 생각들을

   부도 속 깊게 묻어 놓고 적멸에 드셨는가

   발자국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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