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참 좋은-

초장이 싱겁다 / 김환식

 

 

 

 

 

 

 

 

 

 

 

 

 

 

  살다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속을 뒤집어 보여줄 수도 없고

  깨물린 입술이 또 입술을 깨물어야 한다

  사람의 속도 빙어처럼 투명할 수 있다면

  답답할 땐 속을 훤히 보여주면 좋을 것이다

  빙어도 속 터지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때 마다 속을 뒤집어 보이자니 답답했을 것이고

  그래서, 아예 속을 훤히 보여주며 살려고

  날마다 투명하게 진화했을 것이다

  그런 빙어가 술상에 안주로 나와 앉았다

  몸부림을 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제법 단정하고 편안한 모습이다

  나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뒤집은 속을 툭툭 털어 보이고 싶지만

  그렇게 보여줄 대안이 없는 것이다

  빙어가 부럽다

  통째로 빙어 한 마리를 입안에 넣는다

  죽은 줄만 알았던 놈이 꿈틀거린다

  초장이 싱겁다

 

                   - 계간「시와시와」2013년 여름호 -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 法頂  (0) 2022.10.29
명태 이야기 / 황봉학  (0) 2022.10.29
하늘이 파란 날 / 김용택  (0) 2022.10.29
성지순례 / 이공  (0) 2022.10.28
그 쓸쓸하던 풍경 / 박남준  (0)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