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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커피믹스 / 김명기

 

 

 

 

 

 

 

 

 

 

 

 

 



   전력질주를 하며 살던 때가 있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일을 서두르다
   커피를 찢어 뜨거운 물을 붓고
   마시는 것도 잊은 채 마냥 폭주했다
   불안한 미래를 감추기 위해
   저당 잡힌 육신을 돌려 막다 돌아보면
   기다리다 지쳐 버린 커피가
   테이블 데스처럼 쌓여 갔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과
   철학서적과 생을 다독이던 시집 대신
   집요한 매뉴얼과 실적서에 지쳐 버린 내가 

   세상에 없는 사람 같았다
   잊은 채 식어 버린 커피처럼
   차갑게 굳은 염한 아버지 얼굴을 만지고 나와
   마시던 커피는 얼마나 뜨거웠던지
   나를 잊어버리며 식어 가던 커피에는
   아무런 노선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서둘러야 할 일을 서두르지 않고
   가끔 뜨거운 물에 커피를 부으며
   끝까지 친절하지 않았던
   차디찬 아버지 얼굴을 곁들여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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