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미사가 끝나자 눈이 내린다
어깨를 구부리고 눈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롱부츠를 신은 여자가 가로등 불빛 아래
담배를 피우며 서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이이라도
한번 더 보기 위하여 찾아온 것일까
큰수녀님은 싸리빗자루로 성당 앞에 내리는 눈을 쓸고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가 기어내려온 사내처럼
알몸의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여자 앞을 지나간다
여자는 눈송이 사이로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입술을 내던지듯 담배꽁초를 휙 내던진다
눈길에 떨어진 붉은 루즈가 묻은 담배꽁초는 섹시하다
만나기 전에 이미 헤어지고
헤어지기 전에 이미 만난 적이 있었던가
눈은 내리는데
가로등 불빛 아래 하루살이떼처럼 눈송이는 날리는데
여자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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