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참 좋은-

하선 (下船) / 이성배

 

 

 

 

 

 

 

 

 

 

 

 

 

   밥은 묵었나

   내사 요새 통 밥맛을 모르겄다 아이가

   담배 하나 도

   그래도 담배맛은 안변하니 쪼개이 더 살겄제

   사람이 희한하제

   바다 우에서는 그리도 바다가 실터마는

   바다 내음 못 맡으니 답답해 미치겄다

   그래 우짜노 요래 쪼그리고 썩은 갯냄이라도 맡아야지

   한 세상 짬깐인기라

   열여덟에 첫 배 탔으니 벌써 오십 년이 지났따 아이가

   그때가 좋았는기라

   전부 손으로 해서 심은 들어찌마는

   앞 바다만 나가도 맹태가 천지삐가린기라

   한 배 잔뜩 풀어놓으면 그기 다 돈이였제

   여펜네 주고도 한 매칠 방석집 가시나들

   궁디는 두드릴 수 있었다 아이가

   그라다가 그 맹태 쪼차서 북양까지 안갔더나

   니 산만한 파도 못봤제

   바다가 벌떡 일어나 산처럼 덮치는기라

   파도가 몸에 묻으몬 그대로 칼이 박히는기라

   물에 살갗이 찢어지는기라

   말도 마라 죽을 고비 수 없이 넘겨따 아이가

   죽은 사람 쎄삤다 아이가

   어이구 우째 그 일을 했는지

   인자는 천만금 준다캐도 못할끼라

   못난 서방 파도 우에 띄워놓고 간 졸이다

   그기 병이 되가꼬 마누라 일찍 안갔나

   자슥들 다 소용 없는기라

   지 잘나서 큰 줄 알제 오데 애비 에미 고생 모른다카이

   한 세상이 배 위인기라

   사는 기 파도 우에 미끄럼인기라

   내는 고기를 쫓고 또 태풍은 내를 쪼차오고

   죽을 똥 살 똥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벌써 여기 아이가

   참말로 잠깐이제 잠깐인기라

   이제 고마 내도 세상에서 내릴 때가 된기제

   항구가 바로 코 앞이제

 

   담배 하나 더 도고

              - 시집 <이어도 주막> 애지. 2019 -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이끄는 이 누구신가 / 이덕규  (0) 2023.03.02
어머니의 밥 / 오봉옥  (0) 2023.03.01
봄길과 동행하다 / 이기철  (0) 2023.03.01
곰소에서 / 이대흠  (0) 2023.03.01
고백 / 남진우  (0) 2023.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