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비가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은 몸을 두고 늘 멀리 나가 헤매느라 바쁘다
예전엔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였는데
언제부턴가 뒤처지는 몸을 마음이 앞질러간다
어쩌다 몸이 덜컥 고장이 나면
하루쯤 집에 머물면서 팔 다리를 주물러 주던 마음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한 데 눈을 팔아서
며칠씩 몸을 떠나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어슬렁거리다 온다
오래 비웠던 빈집처럼
썰렁한 몸으로 들어서는 마음은
언제나 축축하게 젖어 있다
어느 날은 옛 마을로 가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탄 마음이
누굴 만나고 왔는지 늦은 밤 만취 상채로 돌아와
고된 몸을 못살게 굴면서 속울음을 운다
늘 바깥으로 돌고 돌아 서먹해진 마음이
어쩌다 집에 들어와 피곤하다며 불을 끄고 누우면
파김치처럼 늘어진 몸이 먼저 깜깜해지는데,
불 꺼진 몸속에서 문득 골똘해진 마음이
천천히 일어나 생시인 듯
또 어디 먼 마음에 이끌려 꿈길을 간다
- 계간 《불교문예》 2020년 겨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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