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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탁좆 / 이원규

 

 

 

 

 

 

 

 

 

 

 

 

 

 

 

 

 

 

 

 

   오해하지 마시라

   탁좆은 탁족(濯足)의 오자가 아니다

   한여름 계곡물에 발만 담그면 탁족이지만

   새벽마다 불끈 일출 조짐을 보이는 불의 알까지

   푸덩덩 찬물에 말면 탁좆이다

   오늘도 피아골로 숨어들어 거풍에

   탁좆을 하다 마당바위 찜질방에 드러누어

   햇볕 사우나로 젖은 몸 말리는데,  어허라

   열두어 걸음 위의 계곡 긴 머리 산중 처녀도

   훌러덩 탁좆, 아니 탁십(濯十)을 하는 게 아닌가

   몽정기의 소년처럼 후다닥 옷가지를 걸치고

   연이어 너덧 개비 담배를 피울 때까지

   스물댓 살의 산중 처녀 여여하니

   꼭 무슨 죄인처럼 쪼그려 앉아 기다리고 기다릴 뿐

   이윽고 젖은 머리카락 산바람 스치는 처자에게

   이보씨요, 아가씨!  등산로에서 훤히 보이는데서

   꼭 그래야 스겄소?  농을 던지자마자 차암,

   보는 지가 꼴리지 내가 꼴리나!

   장풍 일격을 날리며 청솔모처럼 통통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게 아닌가

   멍하니 불의 알이 오그라지도록

   아직 젊은 흑발 대선사를 보긴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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