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붉은 그믐의 밤이 반죽한 한 몸이 있었는데
무딘 칼 한 자루에도
마음 곧잘 내어 주던 착한 영혼이 있었는데
잠깐의 목멤이 없지는 않았으나
모르는 척 식당에 혼자 앉아
팥칼국수를 먹는 저녁
내가 미처 음복 못하고 보낸
첩첩의 고통이 긴 실타래 풀어
마침내 나를 먹이는가
떠난 당신이 내 앞에 앉아
허연 국수사발 같은 눈동자로 멍하니
나를 응시하는데
살아야 한다고, 때로는 무심한 듯
살아야 한다고
왼손이 오른손에게 더운 손이 찬 손에게
몸이 일부를 내어 주며
숟가락을 내미는 시간, 핏빛의 당신을
물 한 모금 없이 후루룩 삼키는 저녁
목으로 넘어가는 이 따뜻한 어둠이
당신의 눈물인 듯 간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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