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와 바위가 기댄 암문을 거쳐야
암자에 오를 수 있다
암문은 좁고 낮아서
몸집이 크거나 짐이 많은 사람은
통과할 수가 없다
꼿꼿한 허리도 굽혀야 하고
머리를 푹 수그려야 할 때도 있다
가끔은 무릎걸음도 해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게 올라가도
바위가 막아서고 사철나무가 막아서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야 한다
대웅전에서 해우소 가는 길도 그렇고
상관음전과 하관음전 가는 길도 그렇고
산신각 가는 길도 그렇다
비가 오면 우산을 접어야 한다
이건 분명 부처님의 기획이다
오늘은 비가 와서
비를 맞으며 바위 문을 통과했다
빗방울이 나를 밟고 활엽수에게 건너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산이 뒤척이며
파도 소리 법음을 내고 있다.
-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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