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 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리끄락 / 마경덕 (0) | 2024.02.22 |
---|---|
골목 / 전순복 (0) | 2024.02.22 |
雪夜 / 나상국 (0) | 2024.02.22 |
암소 / 문정희 (0) | 2024.02.21 |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 엄원태 (0) | 2024.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