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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골목 / 전순복

 

 

 

 

 

 

 

 

 

 

 

 

 

 

 

 

 

   술에 먹힌 젊은이가 두 다리 뻗고 앉아

   “어머니 아버지 왜 나를 낳셨나요

   한도 많은 세상길에 눈물만 흐릅니다”

   노래와 통곡이 버무려지던 길

 

   대보름날이면

   깡통에 불을 넣어 돌리는 아이들이

   반딧불처럼 날아다니던 길

 

   용케 집을 찾아왔으나 골목 입구에 쓰러진

   아무개 아비를 발견한 아무개 어미가

   “저기 아무개 아비가 쓰러져있네”  알려주어

   치마폭에 한숨을 닦은 어미가

   큰 자식을 데리고 내려가

   술에 먹힌 아비가 양 날개에 식솔을 걸치고

   비척비척 올라오면

   쌀독보다 그득한 별을 거느린 눈 밝은 달이

   빙그레 웃어주던 길

 

   가난을 등에 진 남자들의 헛기침 소리와

   고물장수, 엿장수, 재첩국 장수, 

   찹쌀떡 메밀묵 장수들이

   머리에 어깨에, 가난의 방물을 지고 흘러가던 길

 

   숨 가쁘게 먹이 물어 나르던 어머니

   돌아가신 이듬해 소방도로에 입적되어

   사리하나 남기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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