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참 좋은-

가리봉동 61년 소띠 마귀순 씨 / 박제영

 

 

 

 

 

 

 

 

 

 

 

 

 

 

 

 

 

 

 

  아줌마, 8번에 갈비 2인분 추가요!

  아줌마, 뭐해 9번에 냉면 네 그릇이요!

  아줌마, 빨리 좀 닦아요 퇴근 안 할 거예요?

  그놈의 아줌마 소리,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 되어서야

  야간 식당 일을 겨우 끝낸 귀순 씨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배고파 밥 줘

  남편은 오늘도 밥타령이다

  여편네가 귀꾸녕이 막혔나

  밥 좀 달라니까

  에라 화상아

  에라 만득아

  차라리 귀신이나 되어서

  저 만득일 잡아묵을까 싶다가도

  불쌍한 저 만득이 내 없으면 또

  어찌 살까 싶은 것이니

  여자가 공부하면 팔자가 드센 법이다

  귀순이 니는 대학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고

  그저 남동생들 뒷바라지만 잘하면 된다

  쫄딱 망해먹은 아버지, 망할 놈의 유언,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요 유언은 유언이라,

  일찌감치 대학 포기하고 여상을 졸업한 마귀순 씨

  은행에 취업해서 가장 노릇하며

  남동생들 대학까지 보냈는데, 싫다 해도

  너 없인 못 산다며 일 년을 쫓아다닌 그 뚝심에,

  탄탄한 중견 기업의 대리에,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 가만덕 씨랑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삼십여년 아무 탈 없이 잘 살았다는데,

  가리봉동 소갈빗집에서 불판을 닦고 있는

  61년 소띠 마귀순 씨는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까

  아줌마, 아줌마, 그놈의 아줌마

  언놈이 꿈속에서도 귀순 씨를 부르나

  아줌마 없다

        - 시집 <안녕, 오타벵가> 달아실.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