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8번에 갈비 2인분 추가요!
아줌마, 뭐해 9번에 냉면 네 그릇이요!
아줌마, 빨리 좀 닦아요 퇴근 안 할 거예요?
그놈의 아줌마 소리,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 되어서야
야간 식당 일을 겨우 끝낸 귀순 씨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배고파 밥 줘
남편은 오늘도 밥타령이다
여편네가 귀꾸녕이 막혔나
밥 좀 달라니까
에라 화상아
에라 만득아
차라리 귀신이나 되어서
저 만득일 잡아묵을까 싶다가도
불쌍한 저 만득이 내 없으면 또
어찌 살까 싶은 것이니
여자가 공부하면 팔자가 드센 법이다
귀순이 니는 대학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고
그저 남동생들 뒷바라지만 잘하면 된다
쫄딱 망해먹은 아버지, 망할 놈의 유언,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요 유언은 유언이라,
일찌감치 대학 포기하고 여상을 졸업한 마귀순 씨
은행에 취업해서 가장 노릇하며
남동생들 대학까지 보냈는데, 싫다 해도
너 없인 못 산다며 일 년을 쫓아다닌 그 뚝심에,
탄탄한 중견 기업의 대리에,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 가만덕 씨랑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삼십여년 아무 탈 없이 잘 살았다는데,
가리봉동 소갈빗집에서 불판을 닦고 있는
61년 소띠 마귀순 씨는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까
아줌마, 아줌마, 그놈의 아줌마
언놈이 꿈속에서도 귀순 씨를 부르나
아줌마 없다
- 시집 <안녕, 오타벵가> 달아실.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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