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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토끼의 간 / 전기철

 

 

 

 

 

 

 

 

 

 

 

 

 

 

 

 

 

   여자는 늘 나를 걱정한다.

   그렇게 날마다 술을 마시고 다녀도

   간은 괜찮으냐. 토끼처럼 간을 빼 놓고

   다닌다고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

   간이 삭았겠지.간 없이 다니는 게 편해.
   간뎅이가 부어 보이지 않겠지.

   나처럼 왜소한 사람이

   간뎅이가 부으면 어떻게 세상에서 살겠어.

   그러니까 늘 비굴하게 살지.
   나는 여자를 자주 속인다.

   하지만 여자는 간을 찾지 않고도

   나를 충분히 위태롭게 한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면 여자 몰래

   오래 묵은 책갈피 속에 간을 끼워 놓는다.

   그리고 실컷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보면

   간은 졸아들 대로 졸아들어 있다.

   간을 조사해 보면 여자의 성난 표정이

   켜켜이 묻어 있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어

   토끼를 찾아간다. 토끼는 내 간의 상태를

   진찰해 보고는 고개를 흔든다.

   나는 토끼에게 하소연해 보지만

   토끼는 연신 고개만 흔들 뿐이다.
   힘없이 돌아서는 등뒤로 토끼가 소리친다.

   간을 너무 오래 두고 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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