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가도 언제나 그 자리
마을 뒷산 중턱에 눈 섭이 하얗게 쇤 중이
가끔씩 보였다
베랑을 베고 그늘에 기대 잠이 들기도 했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모이고 흩어지는 구름과
또 바람과 말을 섞는 것도 같았다
한 번씩 그를 본 사람들은 정신을 놓았다고도 했고
토굴자리는 찾는 주문이라고도 했다
안 밖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덧없음의
그 먼 꼬부랑길을 이어온 옆집 할머니
삭발염의를 향해 합장을 하고
연신 골 깊은 샤머니즘의 고개를 숙인다
할머니의 세속의 무게도 이제 바람 같다
어느새 풀잎 하얀 홀씨
힘이 다 바랜 바람이 쓸고 간다
그 중이 보이지 않은 한 참 후에
그가 생과 사 그 너머를 보는 절 밖의
화승畵僧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탱화 속은 신화속의 얼굴들은 없고
언제나 해와 달과 산과 내(川)가 있다
바로 이곳 현재 내 안에 신이 함께 있다는
화엄의 세계를 그리는 그에게
神이 그렇듯 그 너머에 있을 까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면 거기에 다 있다는데,
“찰나를 가는 내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구나“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게왕국에서 / 신현봉 (0) | 2024.07.29 |
---|---|
파지破紙 / 김란희 (0) | 2024.07.29 |
신발을 보며 / 주봉구 (0) | 2024.07.29 |
실상사지實相寺址에 들다 / 송수권 (0) | 2024.07.29 |
그믐달 / 이정록 (0) | 2024.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