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찬 배추가
속이 차는 게 아니라 실상은 속 차지 못한
어리디 어린 손이 멋모르고 밖으로
밀쳐 나오려는 걸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포대기로 감싸듯 겉으로 얼싸안아주는 것이다
긴 바람 매운 비를 알 리 없는 어린 속잎
갓난아기 손가락 같은 노오란 어린잎이
품안을 벗어나 밖으로 밀치며 나오다 보면
어린잎도 자라나서 손톱이 굵어지고
그제서는 이미 손등은 겉잎처럼 누렇게 들뜨고
진기마저 다 빠뜨린 채 말라가면서
마지막 힘을 다해 배추 속잎을 필사적으로
얼싸안는 것이다
마른 배추잎이 그렇게 왜 살아왔는가를
왜 그렇게 살아와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다가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나면
어느새 배추는 지상에 뿌리를 박고 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한 포기 속 찬 배추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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