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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무너져 내리다 / 김명기

 

 

 

 

 

 

 

 

 

 

 

 

 

 

 

 

 

 

 

 

 

  춘천 갔다 돌아오는 길

  청량리서 용산 오는 전철 타고

  옥수동쯤, 굼뜬 몸으로 허겁지겁

  미처 내리지 못한 노인이

  창밖 지는 노을을 향해 마른침 삼키며

  물끄러미 뱉어 내시는 말씀

  - 늙으면 다 빙신인 기라

  물집처럼 궁글어 터져버린 그 말씀

  굽은 등허리 타고 진물처럼 천천히 흘러

  내게 오는 동안 나는 속없이

  쓸쓸하다 서러워진다

  저 늙은 빙신의 굽은 등짝도

  한 시절 쏟아져 내리는 세상의 부하를

  든든히 받쳐내던 옹벽이었으리라

  일 없다는 듯 열차는 이승의 가운데를

  철컹철컹 가로질러 가는데 천장에서

  모습 없는 젊은 여자, 타박이라도 하듯

  한남동이니 어서 내리라고 성화다

  덧없는 생의 결장 같은 문이 스르르 열리자

  노을에 걸려 위태롭게 끄덕대던 오래된 옹벽 하나

  어둠 밀려드는 강의 남쪽으로 무너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