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에 머리가 올라타면
베개는 어디론가 나를 싣고 떠나죠
시동이 늦게 걸리는 날이면
아이구 이놈의 베개야 도대체 언제 떠날 거니.
어디에 내려놓든 일단 떠나 보자고 재촉을 하죠
하지만, 시동을 재촉할수록 잠의 문은 더 견고해져
부스럭부스럭 뒤척이던 베개는
점점 맑은 소리를 내더니 메밀밭으로 나를 데려가죠
하긴, 달빛과 열애하던 하얀 메밀꽃에게
잠의 나라로 데려가기를 부탁하다니…
섶다리를 건너 메밀꽃만큼 많은 사람이
메밀밭 사이에 몸을 밀어 넣고 웃음을 찍고 있어요
허 생원 당나귀 방울 소리에 잠은 자꾸 흩어지고
베개는 산허리 메밀밭에 갇혀 날아가지 못하고
이렇게 환한 꽃 속에서 꿈의 랜덤으로 떠나는 일은
불가능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메밀밭 한 평이 들어있는
저 베개를 바꿔야 할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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