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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익숙한 낯섦 / 이현숙

 

 

 

 

 

 

 

 

 

 

 

 

 

 

 

 

 

 

 

 

 

 

 

   시력이 떨어졌지. 하지만 괜찮네

   다 볼 필요 있나  그동안 이미 많은 것을

   보았다네  이제 보이는 것만 보면 된다네

   눈이 한결 더 편해지겠는 걸

   청력도 떨어졌지. 하지만 괜찮네

   이제 나의 귀도 쉴 때가 되었다네

   다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앞으로 나의 마음은 평화를 찾을 걸세

   검은 머리가 빠졌지

   이것이야말로 축복 아닌가

   신은 공평하시네

   대신 내게 멋진 은빛 수염을 주셨거든

   뼈가 약해졌지

   드디어 내게도 천천히 걷는 시간이 허락되겠군

   평생 무거운 몸뚱이를 지고 빨리 걷느라

   다리도 꽤나 지쳤을 걸세

   기억도 멀어졌지. 참으로 다행이지 않나

   그 많은 것을 기억하려면 아마 나는

   기절할 걸세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먼 기억들은 갈수록 생생해진다는 것이네

   이를 테면 추억 같은 것들 말일세

   슬퍼하지 말게

   나는 젊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네

   다 쓰고 돌려준 것일 뿐  앞으로는

   덜 보고, 덜 듣고,  덜 기억할 걸세

   이렇게 큰 짐을 덜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자, 이제 나의 음악을 들어 보겠나

   인생이란 한 편의 멋진 연주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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