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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일몰(日沒) / 홍길성

 

 

 

 

 

 

 

 

 

 

 

 

 

 

 

 

 

 

 

 

 

 

 


 

  하루의 소임을 다하고 돌아와 아버지
  그늘이 되어 누우신다 늙은 소잔등의 털처럼 늘어져
  참나무 목침을 괸 머리칼이 희끗하다
  갚지 못한 대출금 연체이자 늘어나듯,
  흰머리는 곱절이나 늘었다
  눈앞이 어둑하신지 아버지 무언가를 더듬으신다
  휭하니 달려가 알전구를 켜니
  몸 세워 잎담배를 마는 아버지 손톱 밑이 까맣다

  추곡수매 거절당한 나락들 보듬고 쓰다듬으셨는가보다

  언젠가 내가 못되게 도회지를 돌다 돌아왔을 때
  보듬어 등 토닥거려주셨듯이,
  버릴 것 버리지 못하고 다시 품은 그 자리에

  누워 듣는 아버지 코고는 소리 아득하다

  언제나 나는 먼발치서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 머리맡에 놓여 있는, 변제를 독촉하는

  서류를 보니 앞일은 캄캄하다
  아버지는 곧 차압당하실 것이다 돌아 올 길을
  잃어버리고 그만, 저 꿈길에서

  내일은 알전구의 촉수라도 높여야겠다
  아버지 걸어오실 저 고샅길까지도 다,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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