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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가족 / 조성식

 

 

 

 

 

 

 

 

 

 

 

 

 

 

 

 

 

 

 

 

 

 

 

 

 

 

 



  집에 들어서면

  대문 옆에 헛간이 서고처럼 서 있는데

  처마 끝에 도서 대여목록 카드처럼 여섯 자루의

  호미가 꽂혀 있다.

  아버지 호미는 장시간 반납하지 않은 책처럼

  한번 들고나가면 며칠씩 밤새고 돌아온다.

  산비탈을 다듬는지 자갈밭을 일구는지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자루만 조금 길면 삽에 가까운 호미,

  그 옆에 어머니 호미는 가장 많이 빌려 보는

  연애소설 같다. 테이프 여러 번 붙인 표지에서

  파스 냄새가 난다. 

  빛나는 손잡이에 밥주걱의 둥근 날을 가진

  넉넉한 호미, 땅을 파는 일보다 아버지가

  파 놓은 흙을 다시 훑어보는 돋보기 알 같은

  눈 밝은 호미, 나란히 서 있는 아내와

  내 호미는 주말이나 가끔 들고나가는 장식용

  백과사전, 철물점 쇳내도 가시지 않은

  두 자루 쇳덩어리, 제대로 땅 한 번 파지 못하고

  마늘이나 고구마 살점만 물어뜯는 날선 칼날,

  그 옆에 장난처럼 걸려 있는

  아이들의 호미가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밭에

  나가실 때 말동무로 따라 나서는

  동화책같이 착한 호미가 한집에 산다.

 

                  -  2008년 신춘문예 농민신문 당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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