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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목련꽃 옆에 눕다 / 김해자

 

속절없이 비가 내려 목련꽃 이파리 땅에 눕길래

따라 눕고픈 밤이던가요

이미 젖어 더 젖을 것도 없는 목련꽃 하도 예뻐서

나도 몰래 그 속으로 들어가버렸는데요

숨은 불씨 연기도 없이 태워버렸는데요

그때 나는 보았어요

납덩이 매단 새 홀연 떠나가는 것을

내 가슴 열고 천천히 날아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건 왜라고 묻는 게 아니야,

의문의 꼬리를 뚝 자르며 서편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그날 이후 목련꽃 이파리 하나 내 안에 담아

오래 에돌아온 후에야 나는 나에게로 돌아왔죠

꽃도 떨어지고 나도 사라지고

바라볼 하늘마저 숨어버린 다음에야

나는 내가 될 수 있었어요

새의 깃털만큼 가벼워진 다음에야

사랑은 바로 오늘, 여기에 있음을

어제 핀 꽃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내일 바람이 데려갈지라도 끝내

이유를 알 수 없음을 슬퍼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냥 바람 따라가기로 했지요

 

        - 김해자,『無花果는 없다』(실천문학사,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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