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비가 내려 목련꽃 이파리 땅에 눕길래
따라 눕고픈 밤이던가요
이미 젖어 더 젖을 것도 없는 목련꽃 하도 예뻐서
나도 몰래 그 속으로 들어가버렸는데요
숨은 불씨 연기도 없이 태워버렸는데요
그때 나는 보았어요
납덩이 매단 새 홀연 떠나가는 것을
내 가슴 열고 천천히 날아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건 왜라고 묻는 게 아니야,
의문의 꼬리를 뚝 자르며 서편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그날 이후 목련꽃 이파리 하나 내 안에 담아
오래 에돌아온 후에야 나는 나에게로 돌아왔죠
꽃도 떨어지고 나도 사라지고
바라볼 하늘마저 숨어버린 다음에야
나는 내가 될 수 있었어요
새의 깃털만큼 가벼워진 다음에야
사랑은 바로 오늘, 여기에 있음을
어제 핀 꽃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내일 바람이 데려갈지라도 끝내
이유를 알 수 없음을 슬퍼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냥 바람 따라가기로 했지요
- 김해자,『無花果는 없다』(실천문학사, 2001) -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나는 사람 / 박천서 (0) | 2022.04.23 |
---|---|
목련 / 이대흠 (0) | 2022.04.23 |
밤꽃 피는 마을 / 백승훈 (0) | 2022.04.23 |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구경애 (0) | 2022.04.22 |
산만디 / 이광 (0) | 2022.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