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은 농협장례식장
밭 갈다 죽은 사람, 감자 심다 죽은 사람
모두 녹슨 호미 같은 손 내려놓고 다급히 이곳으로 온다
마을에서 제일 깨끗하고 제일 따뜻하고 시원한 곳
작은 소로를 따라가면 아무 데서나 바다를 만나듯
농약 차고 풀 뽑고 거름 주고 또 남은 일 찾아
밤 늦게까지 마당에 불 켜고 채소를 다듬다보면
불쑥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농협장례식장과 만난다
죽음이 사람들을 심어 놓고 사람들을 추수하는 곳
경운기나 트랙터로 실어나르는 한 무더기 모판의 벼들처럼
이른 아침부터 영안실에 날라다 놓는
참 부지런한 죽음들이 장례식장 칸칸의 방에 묵는다
영안실도 일종의 숙박업이다
사흘 장례를 치르고 중산간 어디에 있다는 경치 좋은
화장터로 관광 가듯 떠나는 시체들이 관 속에서 즐거워 달그락거린다
첫 소풍 가는 아이처럼 가족들 배웅을 받으며
파종 시기며 전지해야 할 과일나무 따위엔 관심도 없다
농협장례식장에서 제공하는 육개장 조식도 맛있고
직원들과 상조사들의 서비스는 친절하다
아무도 후기를 달 수 없고
체험할 수도 없지만
주렁주렁 금빛으로 익어가는 감귤밭이 올해도 풍년이다
괭이 날처럼 굽은 등으로 사다리에 오르는 노인
덜덜덜 떨리는 치아로 감귤을 한입 베어무는 노인
돈 한 푼 내지 않고 장기체류하며 이곳에
너무 오래 묵은 손님 아닐까
장례식장 건물은 노인의 모자에 새겨진 농협마크를 훔쳐보며
제가 거느리고 호출하는 직원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마을 사람들이 단체관광 가듯 장례식장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잘 가라고, 손에 봉투 하나씩을 들고있고
삼박사일 패키지 상품에 맞춰
농협장례식장은 깨끗이 청소를 마쳐놓은 상태다
농지원부를 펼쳐놓고 명부를 확인하며 이 밤에도 영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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