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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참 좋은-

밥 타는 냄새 / 상희구

 

 

 

 

아, 밥 타는 냄새, 이 얼마만이냐!

일제 코끼리표 전기밥솥이 들어와 자동 전기밥솥이

보편화되면서 밥 타는 냄새를 빼앗아가기 시작하더니

이 땅에서 밥 타는 냄새가 사라졌던 것이다

갑자기 밥 타는 냄새에 옛날의 온갖 것들이

왈칵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저고리 앞섶 끝동에 까망 때가 묻었던 엄마 적삼, 백동 숟가락,

이가 빠진 얼레빗, 삼베 행주, 때 묻은 코고무신

양은 냄비의 밥 타는 냄새는 짝퉁이다

 

기실 진짜 밥 타는 냄새는 그으름이 잔뜩

그슬은 초갓집 부엌에다 무쇠솥 턱하니

걸쳐 놓고 청솔깝으로 불을 때서 타는 밥냄새

라야 하는 것이다

 

참 오랫만에 뉘 집 신참 며느리가 밥을

태우는지 밥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아파트 층층마다 구수한 보리숭늉 한 대접

씩을 나누는 이런 보시가 또 있을라

 

 

                         -  <대구> (황금알,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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