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녘 둥근 달덩이만큼이나
탐스럽게 잘 늙은 호박
일용할 양식으로 찜 솥에 안쳤다
제대로 익었는지
수시로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찔러본다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다
잘 익는다는 것
그것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온몸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리는 일
수도 없이 크고 작은 상처로 뒤덮이는 일
지난날 어떤 뾰쪽한 것들이 나를 찔러
잘 익도록, 잘 늙어가도록
내 몸에 숭숭 구멍을 냈을까
잘 익은 호박에서 달큰한 향기가 난다
온몸에 드러난 상처는 아랑곳없이
파근파근하게 잘도 익은 것이다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問喪 / 김은숙 (0) | 2023.12.03 |
---|---|
엄마는 감자꽃이다 / 이철환 (0) | 2023.12.03 |
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0) | 2023.12.03 |
참, 작다 / 정윤천 (0) | 2023.12.03 |
낮달 / 최영효 (0) | 2023.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