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참 좋은-

겨울 問喪 / 김은숙

 

 

 

 

 

 

 

 

 

 

 

 

 

 

 

 

 

 

 

 

  갑작스럽게 가신 거라 했다

  일흔 세월 조금 너머 이 추위에 홀로 떠난 먼 걸음을

  잘 가신 거라고들 두런거리며

  인절미와 삶은 고기 몇 점과 김치조각

  어지러운 지상에서 망자(亡者)가 마련한

  마지막 상에 둘러앉아 인사처럼 서로의 잔에

  쓴 소주를 붓고 착잡한 생애를 닮은

  뜨거운 국밥 한 그릇 목에 넘기며

  눈빛으로 서로의 안부를 뜨겁게 묻는 겨울 저녁

  살아있는 사람살이의 평안을 확인하는 일상이

  죽음을 잊은 웃음 속에 은근히 생생해지다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모두들 고단하고 힘겨워

  무겁게 지친 어깨는 한쪽으로 기울고

  하나 둘 단추를 푸는 시간 위로 켜켜이 푸념은 쌓이는데

  묵은 정을 전하듯 가득 담은 술잔을 건네는 손도

  붉어질 무렵 언젠가 들은 듯한 낯익은 사연

  모두가 고달픈 일상이 너무들 닮아

  불콰해지는 불빛을 마주보는 얼굴이 문득 민망해져서

  슬쩍 눈길을 피하여 겸연쩍은 웃음도 흘리다가

  저마다 고만고만한 설움을 안고 사는 안쓰러움 털어내듯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날의 평안을 당부하는

  악수를 건네며 돌아오는 길

  이 추위에 먼 길 홀로 떠난 걸음도 잘 가신 거라면

  어떻게 가는 것을 잘 가는 것이라는 걸까

  잘 가신 것이라는 말이 몸에 박혀 떨어지지 않는 밤

  아침에 나간 집으로 늦은 밤 다시 걸음을 옮겨 돌아가듯

  오늘도 타박타박 한 걸음씩 내딛는 이 길이

  어쩌면 모르는 사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어디로 어떻게 길을 잡아 걸음을 옮기면

  내 생의 마지막 길도 잘 가는 것이 될까

  파고드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불현듯 내 걸어온 걸음들을 뒤돌아보는데

  멀리 별빛만 선명하게 빛나는

  겨울밤의 문상(問喪)

 

 

 

 

'좋은, 참 좋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진강변에서 / 梁受敬  (0) 2023.12.04
달 / 석여공  (0) 2023.12.03
엄마는 감자꽃이다 / 이철환  (0) 2023.12.03
호박을 찌다 / 황금모  (0) 2023.12.03
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0) 2023.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