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는 내가 자처한 일이었다
시어른에 시누이 시동생까지
한 때 나는 그들을 내 몸처럼 모셨다
이제 말이지만 어느 땐 나보다 더 잘 모셨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 식구가 반으로 줄 때까지
어머니는 손수 칼을 가셨다
좋은 연장이 좋은 음식을 만들지
며느리로 하여금 불만의 싹이 자랄 수 없도록
어머니 칼 가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설마 어머니께서 하고 많은 일 중
며느리와 칼을 가지고 노셨을까마는
어느 날 거짓말처럼 내게 칼자루를 넘겨주신 어머니
어머니 부재 후 가물거리던 세월만큼
우리 집 칼날도 뭉툭해져 갔다
참다못한 나는 창고를 뒤져 숫돌을 찾아냈고
쓱쓱 문지를 때마다 제 몸 깎으며 퍼렇게 서는 날
칼날 닳을 때 어머니와 내 청춘도 이만큼 닳았겠지
우물이 패이도록 온몸을 칼날에게 바친 둥근 숫돌
오호라 내가 어머니를 모신 것이 아니었구나
어머니 온몸으로 나를 받들어 모시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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