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산 아래 외따로 앉은 초가 같은
초가자붕 끝에 애초로이 매달린 고드름 같은
사립짝에 걸어 놓은 삭아빠진 대조리 같은
초가삼간 툇마루 건너 불 꺼진 외딴방 같은
목침 따윈 머리맡으로 밀어낸 와불 형상 같은
동지섣달 그믐밤에 오소소 떨어대는 문풍지 같은
휑한 방 가운데서 간당거리는 호롱불 같은
벽장 한 구석에 네 귀 나달대는 반짇고리 같은
그 안에 솔기 닳아 반질거리는 골무와 실패 같은
마루안쪽에 터줏대감처럼 앉은 낡은 반닫이 같은
반닫이 위에 배터리 등에 업은 트랜지스터 같은
그 라디오에서 흐르던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같은
소야곡을 듣던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옛이야기책 같은
옛적 내 젊은 어미였었던 어렴풋한 기억의 여인네 같은
금세라도 벽에 걸린 나무 액자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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